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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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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의 미덕과 품행을 가질 것을 격려하며 남녀, 연령, 계급, 인종, 국적, 신체장애에 있어서 차별하지 않는 평등 교육을 목표한다. 건전하고 예절 있는 남녀 교제를 장려하고, 흡연과 음주, 마약 등을 금지한다. 교수와 학생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것이며 서로를 존중하며 아끼는 친절을 가르친다. 학생의 학적 기록의 비밀이 보장될 것이며 학생이 자신의 기록에 대해서 문의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된다.

    본 대학이 설정한 학과목을 이수하는 일에 있어서 학구적인 열성과 성의를 다해 야 한다. 등록한 과목의 수업에 있어서 교사나 교무처장의 허가 없이 장기 결석했을 경우에 학점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본교의 교정에서 오전이나 오후반을 막론하고 모든 수강생과 교사는 반드시 채플 시간에 참석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로 채플을 빠질 경우에는 반드시 교목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학교 친교 점심에도 같이 하기를 희망한다.

    나성삼육대학은 SDA의 전통적인 삼육 교육 이념을 가지고 지.덕.체의 조화 있는 발달을 이상으로 하는 성서적 신학을 추구하는 크리스천 학교이다. 나성삼육대학을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표어들은 본 대학의 교육 목표를 적절하게 말해 줄 것이다.

    ● 본 대학에는 교수님들의 헌신이 있습니다.
    ● 본 대학에는 배우는 학생들의 열정이 있습니다.
    ● 본 대학은 간절한 기도와 형제 사랑이 흘러넘치는 대학입니다.
    ● 본 대학은 마지막 시대에 영원한 복음을 크게 외칠 선지자 학교입니다.

 

<통신과 졸업생의 이야기>

나성삼육대학 통신과를 마치면서!

    졸업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영혼에 대한 도전에 시작이라고 느껴진다. 그동안 반심반의 했던 우리 SDA교리에 대한 정체성 (正體性)에 확증과 우리 모두는 마지막 주자로서에 사도적 사명을 지닌 남은 무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닫게 되였다.

    지난 4년이란 세월이 짧은 시간은 아니였다. 나이 60에 공부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기에 나에게는 남다른 인내가 요구 되는 순간들이었다. 더욱이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자녀가 셋이나 있는 입장에서 경제적 어려움도 관과할 수 없는 터라 마누라 눈총도 많이 맞았다. 눈총도 많이 맞으면 죽는다는 데, 다행이 명이 길어서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마누라 왈 ‘그 나이에 그걸 배워서 무엇에 쓰려고 돈 없에 가며, 밤잠 못자 가며, 사서 그 고생을 하느냐’다. 한 마디로 투자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돈 버는 직업적 라이센스(license) 보다도 더 값진 배움이라는 것을 새삼 더 알게 되였다. 이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행복감과 평안함(요8:32) 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리 흥미 있는 책이라도 30분 이상은 졸음이 쏟아져 독서를 못하는 신경쇠약 증세가 심하여 차 멀미 까지 하는 주제에, 아주 강력한 수면제 효능이 있다는 성경책을 공부 한다니, 사실 나에게는 불가사이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꼴지워 지는 것이다. 물론 좋은 것만 배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이런 저런 교육을 통하여 한 인간의 완성에 이르는 것이 인간에 일생인 것 같다. 인간에 완성 속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알 이유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죽을 때 그 사람은 영원히 실패한 인생을 살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리한 인간에 행복의 조건(?) 속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 건강, 돈, 지식, 명예, 권력, 사랑, 우정, 종교, 취미 활동, 완력 등등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다 소유했을 때 비로서 욕심 많은 인간은 행복하다고 포만감을 느낄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행복에 조건이 곧 인간에 조건일 수도 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도 어쩌면 완전한 인간(하나님)이 되고 싶어서 모든 것을 다 소유 하고도 필요 이상에 것인, 단 한 구루 있는 금단의 열매(창2:9)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결국 지나친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우리에 현실도 육신적 욕망에 노예가 되여 자신에 영혼을 좀먹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죽음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피로서 인간들에 죽음의 길을 막아서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죽음 보다 더 크신 희생에 길이 있으셨다면 그 길도 마다 않고 가셨을 것이다. 무디고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롬5:10). 이 땅에 단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오시겠다 든 주님에 다함 이 없으신 심오한 사랑을, 그분께서는 우리도 그렇 답습하기를 기다리신다 (마5:44).

    옛날과는 달리 오늘날에 학교 교육에 개념은 직업 창출을 위한 전문적인 기술 교육에 치우치다 보니 인간에 윤리나 도덕적 관념을 위한 인성 교육이 결핍됨 으로 인간미도 메말라 버린체, 인간 자체가 기계화 되여가고 있다는 서글픔이 있다(마24:12).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삼육교육”(知.德.體) 제도는 이 마지 막 시대를 지탱 할 전인 교육(全人 敎育) 이며 평생 교육인 것이다” (Ed. 13).

    이번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하여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성경책을 보던 예언의 신 서적들을 읽던 졸음이 없어 진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밤 두 세시까지도 성경주석을 비롯한 예언의 신 등 자료 서적들을 열람하고는 했다. 물론 그러고 나면 다음날 피곤함 속에서 온종일 작업을 해야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주님께서는 이 못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모진 십자가 상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속에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하면 나에 이런 잠시의 피로함 정도야 왜 참을 수 없을 것인가 싶은 마음에 용기와 힘을 얻고는 하였다.

    이번 수강을 통하여 뜻밖에 얻어진 것이 많지만 더욱 새로운 것이 있다면, 우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 교인은 하나의 단순한 성도이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멸망해 가는 이 세대에게 “세 천사의 기별”(계:6-12)을 필연코 전해야 할 숙명적 사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불 때 나성삼육대학은 ‘만인에게 열린 문”이라고 전하고 싶다. 꼭 졸업이나 학위를 겨냥하지 않더라도 수강 목록에서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를 한다면 값진 투자가 될 것임을 확신 하는 바다.

    고고학의 발달로 더 많은 물증들이 성경에 역사성을 입증해 주고 교수님들에 해박한 지식과 포괄적인 자료들을 동원하여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열성적인 교수법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여 살아 숨쉬는 영혼에 교류를 감지케 한다. 소수가 대수를 이길 수 있는 길은 능력을 배양하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하여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느냐를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아의 때와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을 때에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라라” (마24:38,39). 나에 믿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쟁기는 녹슬어 없어지 듯이 우리에 믿음도 사용 (전파)하지 않으면 결국 녹슬어 없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 되 전달자(messenger)에 대한 신뢰도가 없으면 그 복음은 무용지물 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그의 삶속에서 구원 받았음이 나타난다면 복음은 자연적으로 전해지게 되여 있는 것이다.

    요즈음은 모르겠 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성직자들이 존경을 받은 것은 그들에 고상(高尙)한 삶의 품위에서 비롯된 것이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언급 하신 산상 설교 (sermon on the mount, 마5:3-10)의 말씀들을 실행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주님께서 이 지상에 초림하셨을 때 최초로 강조 하신 수훈 (垂訓)인 것이다. 예수님은 십계명 보다도 먼저 하나님에 백성이 된(될) 성도들에게 믿음에 대한 기초(rock)인 인간에 윤리와 믿는 자에 행함적 거취를 천명하신 것이다. 인간적인 품성 변화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자 복음화에 걸림돌 역활만 할 뿐이다. 하늘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이 땅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을 갖을 필요가 없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 (마6:19-21) 라.고 설파하고 계신다.

    세상을 초월한 구원적 확신이 있다면 무소유의 행복이 우리를 더 복되게 할 것임을 성경은 가르치 고 있다 (딤전6:10). 세상에 대한 애착을 단절(마6:24; 딤전 6:17) 시키지 못하는한 우리 믿음은 영원한 생명력(구속력)이 없을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 (계12: 17)에 시금석이 될 일요일 휴업법 (Sunday of Law) 은 사단에 마지막 대쟁투의 무기로 등장할 것이다 (계13:11-18). 그날이 오면 우리는 세상이냐? 믿음이냐?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한다 (계13:15-17). 우리는 과연 롯에 부인(창19:26)처럼 이 땅에 부귀영화에 대해 뒤돌아 보지 않을 자신이 있겠는가?! 어떻게 쌓아온 재물들인데…,

    계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이 본 예언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이다(계1:7). 그리고 계19:10에 보면, “예수의 증거”(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는 “대언의 영”(계19:10) 곧 “예언의 신(“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 KJV)으로서, ‘예언의 선물’이 주어질 것을 말씀 하셨다. 성서 예언에 나타난 종말론적 교회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자손”(the remnant of her seed), “곧 남은 교회”(remnant church)는 예언의 신(the spirit of prophecy)의 선물이 주어진 교회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행이 이 유혹과 오류가 범람하는 마지막 시대 (마24: 11) 에 선지자를 통하여 이해하기 쉽고 친근감 있이 닥아갈 수 있는 예언에 신 (<예수께 대한 증언(자), 표준새 번 역 > 계19:10) 을 주심으로 흔들리지 아니 하고 정로를 걸어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는가! 재림에 때에 우리가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변화 된 품성과’ 자기가 인도한 영혼’ 뿐이라고 영감의 필치는 가르치고 있다.

10. 28. 09 통신과 학생: 최 기 환